이렇게까지 내가 환경문제를 진지하게 받아 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햐면 나에게 '환경'의 주제는 늘 '부록' 같은 존재였다. 학창시절 배웠던 교과서에서는 환경문제를 극히 일부분만 다뤘다. 환경을 위한 정보는 맨 마지막 단원의 몇 문장 혹은 소단원의 끄트머리에 아주 부분적으로 존재했다. 그 페이지에는 환경 운동가들이 '지구를 살리자' 라며 너무나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환경을 다루는 마지막 단원은 쉬운 부분이니 대충 읽어보라며 넘어가 버렸던 기억도 난다. 이 것들은 시험범위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다루어졌다고 한들 정답은 늘 도덕적으로 선량한 것들 뿐이었다. 어떤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야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따르는지 정확한 상황 판단은 배제한 채,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와 같은 부류의 명제들을 글로써 한번 더 상기시킬 뿐이었다. 참으로 교과서다워 보이는 단정한 교육 말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이 되었지만, 환경 문제는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채 살아왔고, 그것을 다른 세상의 것처럼 받아들였다.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 영향일까 현재도 환경단체를 떠올리면 어쩌면 꽤 마이너한 집단일 수도 있다. 지하철 역에서 녹색 티셔츠를 입고 지구를 위해 선전하는 그들은, 선해보이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바쁜 시간에 왜 길을 막는지, 돈은 잘 벌어 먹고 사는지, 왜 굳이 저런 일들을 하는지, 오히려 걱정을 불어일으키는 단체랄까. 빠르고 바쁜 세상에서 그들은 관심밖의 목소리이다.
- 중학교 1학년 4종 교과서를 비교한 결과 일부 교과서에서 에너지 자립 마을, 일상에서 사용되는 지속 가능한 자원을 소개하는 데 그쳤고, 한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내용조차 없이 단순 지식만 나열되어 있었다.
- 물건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쓰레기가 양산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내용이 교과서에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환경 교육이 여전히 제자리인 까닭> 차성준 (남양주다산중학교 교사)
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84
- 이재영 교수는 “학교에서는 환경교육을 환경교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과목으로 여겨 다른 과목 교사들이 비디오를 틀어 주거나 자습을 시키는 일이 흔하다”면서 “학생들에게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악영향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 신 교사는 “‘자원을 아껴라’, ‘쓰레기를 줄여라’라는 식의 환경교육은 삶을 불편하게 하는 훈계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819021001&wlog_tag3=naver
이마를 탁 치게 된 계기도 있었다. 이사왔을 때의 일이다. 전에 살던 집 주인은 내게 두고온 짐이 있다면서 곧 치우러 온다는 양해를 구했다. 큰 건 아니고 '몇 몇 개의 짐'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미처 챙기지 못한 몇 개의 소품을 생각했고, 그 정도는 내게 별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정도의 너그러움은 있으니. 하지만 웬걸. 그것들은 이불, 매트리스커버, 카펫, 거울 등등 몇일 전까지 누군가 살다간 흔적이 분명했다. 전혀 청소된 집이 아니었다. 곱씹어 생각해보니, 전 집주인은 내가 입주하기 전 중간세입자를 들여 놓는다고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 집주인은 2월 중순에 이사를 나가고, 3월에 중간세입자를 들이고, 4월에는 빈 집이었고, 5월 1일이 내가 입주하는 날이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6월 초에나 독일에 올 수 있었으므로 전 집 주인에게는 본인의 물건을 치우고 다음 사람을 위해 청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 4월과 5월, 두 달이나 있었다. 중간 세입자란, 장기 에어비앤비와 같은 형식으로 중 장기적으로 집을 빌려주는 형태를 말한다. 누군가 쓰던 짐들을 치우면서 화가 아주아주 많이 났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쓰다간 흔적을 청소하는 일이 상당히 불쾌했다. 내가 살아야 할 자리에 그들의 머리카락과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쓰다남은 손세정제, 제 멋대로 버려진 공병, 알 수 없는 먼지, 고장 난 의자, 심지어 매트리스 아래에서는 팬티가 나왔다.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자기가 설치한 햇빛가림막은 떼어가겠다고 연락이 왔던 것이 괘씸하기까지 했다. 남이 쓰던 매트리스 커버를 벗겨내고 이불을 고이 접어주고, 설치물들을 떼어내고, 그들의 흔적을 치우고 있자니 모양새가 마치 남의 똥을 치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사를 막 마친 참이라 들여진 내 짐도 엉켜있던 것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다음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본인들이 쓰고 간 것들은 본인들이 정리를 하고 떠났어야 했다. 무책임, 아몰랑 식의 뒷처리에 나는 결국 화가 폭발 했고, 전 집주인에게 매우 따졌다. 사과는 받았지만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
일개의 작은 사건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의 환경문제와 매우 유사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그들의 자리를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확고하게 스쳤다. 우리가 남긴 쓰레기들은 누가 치우게 될까? 이삿집에 대한 분노는 환경문제의 분노로 확장되었고, 우리가 어지럽힌 것들은 우리 손으로 깨끗히 정리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이르렀다. 편리함만 찾는 시대에 아무도 '쓰레기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사실이 오싹했다. 나는 이 깨달음을 얻은 후 이 문제를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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